나의 Phonitor XE 헤드폰앰프 사용기
소고
안녕하세요, 저의 헤드폰 앰프인 포니터 XE 사용기를 올려봅니다. 헤드폰 취미를 소위 헤드파이(Head-fi)라고 하지요. 헤드파이는 일반적인 룸 오디오 취미와 다르게 끝이 있는 취미라고 합니다. 룸 오디오는 파고들면 "전기공사를 하기 위해 한전과 무슨 계약서를 썼다더라"같은 괴담이 들리기도 하는 반면, 헤드파이는 그정도까지는(?) 아니거든요. 상대적으로 저렴한 취미입니다.
왜 룸 오디오가 아니고 헤드파이일까요? 제 경험도 곧 말씀드리겠지만 찾아보면 헤드파이를 시작하는 경위도 다양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소싯적 밴드를 하고, 이어폰 하이파이(이어파이)를 하다가 넘어오는가 하면, 저는 룸오디오를 즐기다가 아이가 생기면서 야간 음악감상을 위해 헤드파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현재 포니터 XE에 코드(Chord)의 큐티스트(Qutest)라고 하는 DAC로 음악 감상을 하고 있습니다. 헤드폰은 포칼의 유토피아와 스텔리아입니다. 헤드폰이나 DAC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포니터로 넘어오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바로 직전, 저는 STAX의 SRM-252S라고 하는 입문형 헤드폰을 쓰고 있었습니다. STAX는 제 헤드파이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STAX는 정전형 스피커라 하여, 판막에 높은 전압을 걸어서 판을 떨어서 소리를 만듭니다. 제게 이런 구동방식은 신세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구동 방식인 포칼의 스텔리아와 유토피아를 마련했습니다.

헤드폰은 구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STAX가 독자 앰프와 리시버를 사용하다보니, 두 헤드폰을 구동할 앰프와 DAC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헤드파이 지식이 전무했던 저는 What Hifi라는 매체의 베스트 앰프 추천 글을 보게 되었고, 여기서 가장 괜찮아보였던 포니터 XE를 골랐습니다. (https://www.whathifi.com/best-buys/accessories/best-headphone-amplifiers).

일반적인 앰프와 다르게 헤드폰 특화 앰프는 헤드폰을 위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먼저 크로스피드 기능이 있습니다. 크로스피드란 일반적인 앰프의 기능과 다르게 소리의 시차를 섞어주어 헤드폰과 같은 머리에 직결되는 장비에 공간감을 만들어 줍니다. 일반적인 룸 오디오에서 스피커는 물리적으로 떨어 있습니다. 청자는 왼쪽/오른쪽 스피커의 차이와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가 왼쪽 벽면에 반사되어 들리는 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입체감을 느낍니다. 크로스피드란 이런 시차를 기계적으로 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크로스피드 기능이 있는 앰프는 더욱 현장감있는 (스테이징) 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앵글(각도)입니다. 이는 소리가 들어오는 각도를 조절해서 입체감을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헤드폰이나 이어폰 사용자가 곡의 성향에 따라 소리의 상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포니터는 이 두 가지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헤드폰 사용자가 더욱 현장감 있는 소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포니터는 2022년에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헤드폰 앰프로, 해외에서는 나름의 팬이 두텁게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DAC를 추가했습니다. 포니터를 구매하고 난 뒤 서치를 하다가 발견한 해외 포럼에서는 2018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포니터를 즐기는 유저들의 이야기와 평가가 남아있었습니다. (https://forum.headphones.com/t/spl-phonitor-x-dac-amp-official-thread/50/253?page=13)
이 유저들의 다양한 조합을 보고 있노라면, 저 역시도 포니터에 무언가를 얹어볼까-하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래서 DAC를 추가 구매했습니다.

DAC는 코드(Chord)의 큐티스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조합은 앞서 설명드렸던 포럼에서 검증된 조합이기도 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유진스파더'라는 분께서도 이미 해 본 조합이더라고요.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hometheater&wr_id=363808
유진스파더님은 저 글에서 현재 세팅에 이르기까지 총 11단계라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조합은 그 중 4번째로, 유진스파더님의 11 단계를 수행할 수 있는 재력과 실행력이 부럽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다음 단계로 간다면 저는 유진스파파님처럼 코드 제품을 파고들기보다는 T+A의 HA200으로 넘어가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T+A 깔끔하게 떨어지는 통 알류미늄의 매력과 T+A 시리즈의 깨끗한 소리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포니터와 T+A 사이에는 금전적으로 대단한 간극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실행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옆길로 샜습니다만, 포니터는 이미 훌륭한 헤드폰 앰프입니다. 제 기준 두 가지 큰 재미가 있는데 하나는 노브의 감촉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의 즐거움입니다.

노브의 경우 알프스의 포텐셔미터(Potentiometer)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약 45mm의 통알루미늄으로 된 노브는 돌릴때마다 저항이 느껴지며 묵직하게 돌아갑니다. 해외 포럼에서는 이 노브의 감촉을 "꿀 속에 스푼을 넣고 젓는 듯한" 감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이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저는 곡이 끝나갈때즈음 저도 모르게 손을 노브에 가져다 대곤 합니다. 왼쪽 조절부에 있는 작은 4개의 노브는 각각 단계가 정해져있어서, 원하는 세팅에 가져다 댈 때마다 찰칵거리며 소리를 내는 것이 즐겁습니다. 헤드파이 유저가 커다란 헤드폰 앰프를 소유하는 이유는 소리의 의미도 있겠지만 감촉, 시각적 즐거움도 분명 한 몫 할 것입니다. 포니터의 노브는 유저가 조작하는대로 소리를 내게끔 움직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샛노란 UV 미터가 춤추는 것도 한 즐거움 하고요.
소리도 포니터만의 개성이 있습니다. 포니터의 제조사인 SPL은 독일 회사입니다. 이 제품 역시 우리가 독일에서 의례 기대하는 품질과 성능을 보여줍니다. 정확하고 깔끔합니다. SPL 제품은 오디오 마니아 뿐 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도 모니터 용도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포니터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곡 스타일이 바뀔때마다 멜로디와 그 멜로디를 만드는 층위(레이어)를 뜯어보면서 곡 전체를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어떤 오디오파일은 포니터의 또렷한 소리에 감성을 더하고자 진공관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조합이 이해가 됩니다. 결국 오디오파이란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정엔 옳고 그름이 없어서, 시퍼렇게 날이 선 소리를 위해 조합을 깎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정 반대의 기기를 조합해서 중독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디오는 어느 시점 이상부터는 과학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앞서 제가 더 하고 싶은 헤드파이 여정이 있다곤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우선 지금의 조합(포니터 + 큐티스트 DAC)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포니터가 있으면 (국내 수입버전의 경우 DAC가 모두 탑재됨) DAC도 없어도 되고, 헤드폰만 있으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족함을 느낄때에 DAC를 추가한다거나, 헤드폰을 바꾸는 등 비로소 헤드파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적당한 가격(?)에 나름 괜찮은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앰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절대 다수는 헤드파이나 오디오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취미"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실겁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렇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저렴한 헤드폰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듣고 가슴 두근거리며 몇 백 번이고 한 곡을 반복해서 들었던 추억이 있던 분들이라면, 헤드파이는 한 번쯤 시도해봄직한 즐거운 취미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장비로 추억의 곡을 듣는다거나, 음질 좋기로 유명한 곡을 다시 한 번 들어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걔중에는 음질이 좋아보이는 척 꼼수(?)를 부린 곡이 있는가하면, 어떤 곡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색다른 재미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도 포니터로 음악을 듣는 하루 30분에서 한 시간이 마법같습니다. 24시간 중 잠깐이라도 마법을 느낄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